
한국적 소재를 사용한다고해서 그게 왜 이상한 것일까?
명상과 수행이 언제부터 서양의 전유물이 되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내가 보기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주제만을 놓고 본다면 정말 색다른 이야기이다.
'자기애'는 과연 무엇인지, 그것은 나쁜 것인가? 좋은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항상 찾는 희망이나 사랑, 배려와 같은 '빛'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내면에 있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본 나의 감상문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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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생각해본 적 있는지? 사랑은 리얼리티일까, 판타지일까. 양가 사람들 사이에서 혼수 준비에 부산한 커플이면 리얼리티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낀다. 반면 살포시 기대어 오는 상대의 머리 무게를 어깨로 가늠하고 있는 커플이라면 판타지가 무엇인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들만큼은 사랑이 리얼리티인지, 판타지인지 자신 있게 구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구분은 한 때일 뿐, 사람들은 어떤 누구도 사랑이 리얼리티인지 판타지인지 자신 있게 확신하지 못한다. 생을 마감하는 늘그막 즈음, 사람들은 그런 구분에 의미조차 두지 않는다. 과연 인류는 사랑이 리얼리티인지 판타지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럴 필요는 있을까.
비현실적이지만 존재하는 현실의 소재를 찾는 ‘기인세상’의 방송작가 세린과 연우. 연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린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여의주를 찾는 사람들과 조우한다. 세린은 여의주의 실존 여부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어쩔 수 없이 세린을 따라나선 연우는 현실 세계를 버리고 떠난 옛 애인을 발견한다. 방송 소재로 쓰려던 여의주는 쉽사리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여의주를 찾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두 여자는 서서히 스스로의 내면에 자리 잡은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기 시작한다.
<커피마녀의 여의주 레시피>는 ‘리얼리티 판타지’라는 특이한 장르를 표방하는 소설이다. 도입부는 TV 화면 뒤에 숨어있는 방송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리얼리티’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리얼리티가 마침내 닿게 되는 끝 지점에, 예상치 못한 판타지가 기다리고 있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접한 판타지들은, 모니터와 지면 안에서만 존재하는, 저 너머 미들랜드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커피마녀의 여의주 레시피>는 다르다. 현실과 판타지는 서로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개별적 세계가 아니라, 어느 한쪽이 풀려야 다른 한쪽이 풀리는, 동등한 하나의 세계로 정교하게 얽혀있다. 판타지는 주인공의 현실적인 상처들을 치유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반대로 현실은 판타지처럼 보이는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열쇠로 사용된다. 결국 판타지는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의 연장이 되고 그러한 연장 속에서 본래의 현실은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된다.
전체 배경만을 놓고 보았을 때 이 소설은 극사실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무겁지 않다. 고도의 은유와 상징, 내적 심리의 형상화로 대변되는 현대 리얼리즘 소설의 기법을 따르는 대신, 척박하면서도 한없이 가벼운 현실세계의 이면을 직선적이고 경쾌한 속필로 그려낸다. 가벼움이 진지함을 담지 못한다는 생각은 구세대의 편견이다. 경쾌하다 못해 때론 귀엽고 앙증맞다고 할 만한 이 소설의 문체가 개인의 자아탐구와 인간관계의 성찰이라는 고전적 주제를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형식의 자유분방함에서 찾을 수 있다. 게임의 룰이 분명한 리얼리티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쉽사리 자기 속내를 보이지 않는 법. 문체의 경중을 떠나, 리얼리티가 뜻밖의 판타지와 대면하고, 그 둘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는 그 지점에서, 주인공들의 내면은 오롯이 그 실체를 드러낸다. 가볍고 경쾌한 문체는 아이러닉하게도 인간 내면의 실체가 이끌 수 있는 괜한 감상에도, 해답 없는 엄숙주의에도 기울지 않게 하는 중용의 추가 되어 준다.
리얼리티 판타지를 표방한 이 소설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판타지의 요소를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전통적 소재에서 찾아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은 둘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생떽쥐베리의 명언에 대한 21세기 젊은 세대들의 응답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응답은 젊은 시절 누구나가 갈피를 잡지 못했던, 사랑이 리얼리티인지 판타지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힌트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면 과연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현실이 판타지 같고, 판타지가 현실 같아지는 세상의 어느 경계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고자 한다면, 먼저 가장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생을 마감하는 그 어느 날, 후회 없는 한 생애의 추억을 위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을 유쾌하게 고민해보고자 한다면, 이 책이 제시하는 응답에 한번쯤 동의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 소설에서 제시하는 응답은 사랑과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명쾌한 풀이는 아니다. 그 불가해함에 접근하는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을 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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